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
11절(p.68) ~ 15절(p.101)
11절 유성영화의 촬영은 새로운 현상을 제공한다. - 유성영화 촬영이 진행되는 과정과 그 촬영 공간 내에서는 어떠한 독립된 위치도 주어질 수 없다. - 카메라 등의 기계장치, 그것들을 조작하는 스태프들 모두는 연출 자체에는 직접 속해 있지않지만, 연기가 진행되고 있는 한정된 장소 주위를 들락날락 한다는 점에서 촬영 공간에서는 연기를 행하는 배우들만의 ‘독립된 위치’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다. 연극과 영화 - 무대 위의 사건이 환영임을 즉각 깨닫지 못하는 연극과는 달리, 영화가 갖는 환영적 성격은 촬영 이후 여러 필름들을 몽타주 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 기계장치로부터 해방된 듯한 현실감 넘치는 영상 자체가 실은 가장 인공적인 것이 되어 있다. 그리하여 직접적 현실을 조망하는 일은 기술의 나라에 핀 푸른 꽃[1]이 되었다. [1] 초기 독일 낭만주의 작가 노발리스의 장편소설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겐”(1802)에 등장하는 애타게 원하더라도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의 상징. 회화와 영화 - 촬영기사(Operateur)와 회화의 관계는 어떠한 것인가? - 외과의학에서 통용되는 외과(수술)의사(Operateur)와 주술사의 차이를 살펴보면, 외과의사는 환자에 대해 인간 대 인간이라는 관계를 취하는 것을 포기하고 수술의사로서 환자의 몸속에 깊이 파고 들어가지만, 주술사는 환부에 손을 얹고 병을 낫게 함으로써 자신과 환자 사이의 자연적 거리를 그대로 유지한다. - 화가는 작업할 때 대상과의 자연적인 거리를 관찰하는 데 반해, 촬영기사는 대상의 구조 속에까지 깊이 파고든다. - 화가가 만드는 이미지는 총체적인 하나의 이미지이고, 촬영기사가 만드는 영상은 여러 부분들로 잘게 쪼개어진 영상으로서, 이 부분들은 새로운 법칙에 따라 결합된다. 물음 1. 디자이너와 인쇄기, 그리고 인쇄기를 조작하는 인쇄기술자(기장)의 관계는 어떠한 것일까? 물음 2. 한 장의 포스터가 제작되는 과정에서 그 포스터를 “만든” 것은 디자이너일까, 인쇄기일까, 인쇄기술자일까? 이 관계를 서로 분리할 수 있을까? 12절 (건너뜀) 13절 영화는 시각적 인지세계와 청각적 인지세계의 영역 전체에 통각의 심화를 가져오고 있다. - 마치 프로이트의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이 슬쩍 지나쳐버리기 일쑤였던 대화 중의 실수행위*와 같은 무의식적 사태들을 심층적으로 분리해내고 분석 가능하게 했던 것 처럼. - 회화나 연극무대에서 제시되는 (심화적)성과들에 비해, 영화는 그것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확한 그 상황묘사력에 의해 훨씬 큰 분석 가능성과 성과를 이루고 있다. - 영화는 감옥과 같았던 우리의 주변 환경들(사무실, 방, 대도시의 거리 등)을 폭파시켜버림으로써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필연성들에 대한 통찰의 증대, 그리고 지금까지 예상할 수 없었던 유희공간(Spielarum)을 약속한다. - 클로즈업과 슬로모션은 단지 어렴풋하게 보이던 것을 명확하게 하는 것, 신속한 움직임들을 완만하게 보이게끔 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의 새로운 구조를 전면에 드러내는 것이며 익히 알려져 있는 양상들 속에서 미지의 양상을 발견해내는 것이다. - 즉, 카메라에게 말을 거는 자연은 육안에게 말을 거는 자연과는 다른 것이다. - 정신분석학에 의해 비로소 무의식적인 충동의 세계를 알 수 있듯이, 영화에 의해 비로소 무의식적인 시각의 세계를 알 수 있게 된다. 14절 영화의 화면은 고정될 수 없다. - 회화의 캔버스는 관객을 관조로 이끌고 연상작용에 몰두하게 한다. 영화의 경우, 하나의 화면을 눈에 담았다고 생각할 때, 이미 화면은 바뀌어 있다. - 프랑스 작가 뒤아멜은 "내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을 나는 이미 더 이상 생각할 수가 없다. 끊임없이 바뀌어가는 영상들이 내 사고의 자리를 빼앗아버렸다."라고 말한다. 쇼크효과 - 화면을 보고 있는 사람의 연상의 흐름은 화면의 변화에 의해 즉각 중단된다. - 영화나 다다이즘 문학에서 엿보이는 현대 예술의 '촉각적 성질'[2]은 이러한 쇼크효과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 이러한 쇼크효과는 벤야민의 이해에 따르면 현대의 가속화된 행동형식 및 지각형식들(기술, 교통, 컨베이어벨트 작업 등등)과도 긴밀한 상관관계에 있다. [2] "시각이나 청각 등의 개별적인 감각에 작용할 뿐만 아니라 신체 전체에 직접 닿는 듯한, 충격을 가져다주는 느낌"을 벤야민은 촉각적 성질(taktische Qualität)이라고 표현한다. 링크 1. https://vimeo.com/68597939 물음 3.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의 구분이 조금씩 모호해지는 지금, 앞으로 우리의 지각형식들은 어떻게 변화할까? 물음 4. 현재 우리는 세계를 '현실'과 '가상'으로 구분하여 생각하지만, 현실 보다 가상에서의 생활이 더 중요한 시점이 오게된다면, 그때에는 무엇을 '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